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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elopers Blog

버추얼 소재 설계 기술, 가상 공간에서 이루는 신소재 개발의 혁신

2021-09-03

안녕하세요. 저는 현대자동차 기초선행연구소 촉매연구팀 경우민 책임연구원입니다. 저희 촉매연구팀에서는 ‘전동화’라는 미래 자동차 기술의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차세대 배터리, 전기모터, 연료전지 등의 핵심 기술 혁신을 이루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시뮬레이션으로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는 “버추얼 소재 설계” 기술에 대해 설명 드리고자 합니다.

기존 신소재 개발 과정에서의 어려움

기술 혁신을 위해서는 신소재 개발이 필수적인데요, 신소재 개발은 연구자가 실험을 통해 다양한 소재들의 물성을 하나하나 파악하는, ‘시행착오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차세대 배터리 전해질의 경우, 실험을 통해 여러 종류의 유기물과 첨가물 간에 최적의 조합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동시에 기존 실험에 반영된 소재나 조합을 벗어난 혁신적 물질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실험을 돕는 시뮬레이션

저희는 이러한 소재 연구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물리적인 실험뿐만 아니라,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법을 함께 활용하고 있습니다. 소재 개발을 위해 시뮬레이션을 한다는 게 낯설지 않으신가요?

현대자동차그룹은 다양한 분야에서 시뮬레이션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차량 충돌 시뮬레이션이 있는데, 충돌 시 차량 구조, 안전 장치 등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안전한 차량을 효율적으로 개발할 수 있죠. 이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소재를 개발할 때에도 실험 이전에 가상 공간에서 미시적 단계의 시뮬레이션을 수행하여 체계적으로 개발할 수 있으며, 이를 버추얼 소재 설계 기술이라고 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 버추얼 소재 설계 기술에 대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버추얼 소재 설계 기술이란?

버추얼 소재 설계 기술에서는 소재의 원자/분자 단위의 고유 특성과 상호 작용을 가상의 시뮬레이션 공간에서 확인해볼 수 있는데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혁신적 소재가 가져야 하는 분자 구조를 역으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설계한 후보 소재를 실험을 통해 검증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신소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존 과정 대비 시간 및 비용 측면에서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결과물의 완성도 역시 크게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버추얼 소재 설계 기술은 1990년대 후반에 출현하여, 슈퍼컴퓨터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200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자동차, 반도체, 소재·화학, 제약·바이오 등 글로벌 기업이 이 기술을 적극 활용하기 위한 전문 조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활용하는 버추얼 소재 설계 기술

저희 팀에도 버추얼 소재 설계 전문가 그룹이 구성되어 있으며, 저희 기술에 대해 들어보신다면 소재를 개발할 때 시뮬레이션을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버추얼 소재 설계 기술은 크게 <모델 생성>, <특성 계산>, <원리 분석> 과정으로 이루어집니다. 연구자들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새로운 물질을 합성하는 대신, 가상 공간에서 모델(분자 구조)을 간단하게 ‘생성’하여 다양한 종류의 구조에 대해 ‘계산’하고 ‘분석’합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으로 기존 실험 결과와 새로운 시뮬레이션 결과를 학습하여 물질을 개발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버추얼 스크리닝(Virtual Screening)’이라 합니다. 저는 연구소 내 다양한 팀과 협업하여 버추얼 스크리닝으로 소재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차세대 배터리 개발 사례를 예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차세대 배터리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 대비 주행 거리를 대폭 늘이기 위해, 획기적인 에너지 밀도 증가를 목표로 개발 중입니다. 이 과정에서 배터리 음극/양극 및 전해질 신규 소재 발굴은 물론, 효율적인 배터리 셀 구조를 도출하는 연구가 필수입니다. 이를 위해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원자/분자 단위(~10-9m)에서, 셀 단위(~10-3m)에 걸친 다양한 스케일의 시뮬레이션을 수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버추얼 소재 설계 기술에 대해 알아볼까요?

1. 원자/분자 단위 시뮬레이션

우선 모든 시뮬레이션의 근간이 되는 원자/분자 단위의 양자 화학 시뮬레이션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양자 화학 시뮬레이션에서는 양자 화학 이론에 기반하여 원자의 결합을 전자 궤도의 분포로 표현합니다. 이는 역학 이론에 기반하므로, 경험적인 요소가 포함되지 않아 예측 정확도가 높은 장점이 있습니다. 이를 활용해 새로운 분자 구조의 안정성, 분자 간 상호 작용, 열화 반응 등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존에 사용하지 않았던 새로운 물질도 개발할 수 있습니다.

2. 마이크로 단위 시뮬레이션

다만, 위 시뮬레이션의 유일한 단점은 계산 부하가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슈퍼컴퓨터를 사용하더라도 시뮬레이션 가능한 원자 수가 수백 개 이하에 그칩니다. 따라서 배터리 전극 열화 원인 중 하나인 덴드라이트(dendrite)* 성장과 같이 원자 수가 수백만 개 이상에 달하는 미세 조직 수준(~10-6m)의 특성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저희는 자체 개발한 미세 조직 단위의 페이즈 필드 시뮬레이터(phase field simulator)를 활용하여, 덴드라이트의 성장 특성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덴드라이트 : 리튬 배터리의 충전 과정에서 음극 표면에 쌓이는 나뭇가지 모양의 결정체

3. 셀 단위 시뮬레이션

마지막으로 배터리 셀 단위에서 열화/성능을 예측하여 최적의 셀 구조를 도출하는 연구도 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론을 ‘전기화학 모델링’이라 하는데요, 위에서 말씀드린 시뮬레이션들과 연계함으로써 예측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스케일을 연계한 시뮬레이션을 다중 스케일(multi-scale) 시뮬레이션이라 부릅니다. 이를 최근 미국 에너지부(DOE)를 비롯해 도요타, GM과 같은 자동차 제조사에서도 전기차 배터리 연구에 집중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기초선행연구소에서 보유 중인 버추얼 소재 설계 인프라 현황

버추얼 소재 설계를 수행하려면 원자/분자 단위 특성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합니다. 이에 저희는 상용 제품 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자체 개발하여 연구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원자/분자 단위 시뮬레이션은 기존 차량 시뮬레이션에 비해 방대한 계산 자원이 필요하여, 이를 위한 고성능 슈퍼컴퓨터도 갖추고 있습니다.

촉매연구팀 버추얼 소재 설계 R&D 현황

버추얼 소재 설계는 스크리닝의 범위 선정, 결과 분석, 대안 도출 등 모든 설계 과정에서 실험 연구자들과의 유기적인 협업이 꼭 필요합니다. 이에 따라 저희는 기초선행연구소 내 차세대 배터리 개발 그룹과 긴밀하게 협업하여 소재 개발에 소요되는 실험을 50% 이상 절감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터용 소재, 전기화학 촉매 등 친환경 소재 분야에서도 희토류 저감 소재, 초저백금(Ultra-low Pt) 전극 촉매 개발 협업을 수행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실험과 버추얼 소재 설계 기술을 연계한 소재 및 시뮬레이션 특허를 10건 이상 확보하였고, SCI급 논문도 발표하고 있습니다.

미래를 위한 준비 – 양자 컴퓨팅 & 인공지능 활용 소재 자동 설계

현재 진행 중인 연구에서 더 나아가, 한 단계 앞선 혁신 기술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으로 양자 컴퓨팅을 활용한 차세대 시뮬레이션 기술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하드웨어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지금까지는 해결할 수 없었던 대규모 화학 반응이나 실제 크기의 물질에 대한 예측을 양자 컴퓨팅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시뮬레이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희는 양자 컴퓨팅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자체 알고리즘 개발과 시뮬레이션 노하우 축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미래

최근 미국 에너지부 연간 연구 성과 보고회(2021 DOE Annual Merit Review)에 따르면, 80여 건의 배터리 소재 관련 프로젝트 중 절반 이상에서 버추얼 소재 설계를 활용 중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버추얼 소재 설계는 이미 신소재 개발의 필수 과정이 되고 있습니다. 저희 촉매연구팀은 대내외 실험 연구자분들이 버추얼 소재 설계를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협업을 돕는 연결 고리가 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전문성을 강화하고, 가상 환경에서 소재 및 시스템을 직접 설계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려 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창의적으로 혁신 소재를 개발할 수 있는 미래를 꿈꿔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가상 실험으로 이뤄지는 버추얼 소재 설계 기술에 대해 소개해 드렸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소재 연구 분야에 활용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현대자동차그룹 경우민 책임연구원

기초선행연구소에서 버추얼 시뮬레이션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혁신적인 미래 모빌리티를 위한 소재를 스마트하게 개발하고 싶습니다.